최근 출시된 OpenAI의 GPT 5.6을 둘러싼 관심은 프론티어 AI 모델 경쟁이 얼마나 빠르게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새로운 모델이 공개될 때마다 시장의 이목은 더 강력한 성능, 더 긴 작업 수행 능력, 더 넓은 도구 사용 범위로 향합니다.
기업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더 강력한 모델이 등장할수록 조직은 어떤 AI 도구를 도입해야 하는지, 직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AI를 활용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엔터프라이즈 AI 환경에서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AI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 수 있는지, 어떤 자료를 기준으로 답해야 하는지, 결과가 업무적으로 맞는지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가 함께 정리되어야 합니다.
공공행정 지식이 AI 활용 사례가 되는 순간

최근 GitHub에 공개된 대한민국 제도 지도 프로젝트는 이 지점을 잘 보여줍니다. 한 행정직 공무원이 국내 500여개 주요 제도를 하나의 플랫폼에 정리했습니다. 각각의 제도에 해당하는 법령, 조직, 절차, 예산, 문서를 읽고 구조화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한 장짜리 체계도로 만든 작업입니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결과물의 규모 때문만은 아닙니다. 공공행정이라는 도메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AI를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어떤 법령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어떤 기관과 절차가 연결되는지, 어떤 예산 항목을 함께 봐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AI에게 질문하고, 결과를 검토하고, 다시 구조를 정리했습니다.
물리학 연구에서 AI 코드의 한계를 발견한 사례
비슷한 문제는 과학 소프트웨어 개발 사례에서도 확인됩니다. 최근 5월 공개된 한 사례 연구에서는 물리학자가 Claude Code를 감독하며 과학 계산 모듈을 개발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여러 테스트를 통과하는 코드를 만들었지만, 일부 결과는 물리학적으로 맞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이 오류는 일반적인 테스트만으로는 드러나지 않았고, 물리학자의 도메인 지식이 개입했을 때 수정될 수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작동하는 코드라도, 그 결과가 실제 이론과 맞는지는 해당 분야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판단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AI가 만든 산출물은 기술적으로 맞아 보일 수 있지만, 업무적으로 타당한지는 별도의 검증을 필요로 합니다. 엔터프라이즈 AI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조직의 정책, 승인 기준, 예외 규칙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AI 결과를 실제 업무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AI 리터러시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습니다
AI 도구 사용법을 다루는 교육 자료와 강의 영상은 이미 넘쳐납니다. 프롬프트 작성법, 컨텍스트 관리, 에이전트 실행 환경을 설명하는 자료도 많습니다. 이런 자료는 AI를 처음 사용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교육 자료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각자가 맡고 있는 업무의 맥락, 조직 안에서 통용되는 판단 기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예외, 데이터가 실제로 쓰이는 방식입니다. 이 지식은 해당 업무 안에 오래 머물러보지 않으면 상세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AI 리터러시는 도구 사용법을 익히는 단계에서, 업무를 AI가 다룰 수 있는 형태로 설명하고 검증하는 역량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업 AI 도입에서 필요한 리터러시는 “어떤 프롬프트를 쓰는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현업의 도메인 지식을 얼마나 잘 꺼내고, 정리하고, AI가 참조할 수 있는 기준으로 바꾸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모델이 더 강력해질수록 더 많은 미지의 영역이 드러납니다
이 차이는 모델이 더 강력해질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짧은 질의로 끝나는 단순 업무에서는 맥락의 빈틈이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AI가 복잡하고 긴 작업을 수행할수록 사람이 설명하지 않은 전제와 현장의 제약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최근 Anthropic에서 출시한 강력한 모델 Fable을 사용해 본 어느 한 개발자도 비슷한 경험을 남겼습니다. 그는 Fable을 활용해 작업하며, 작업 품질의 병목이 모델의 능력보다 자신이 미처 정의하지 못한 맥락과 제약에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합니다. 프롬프트는 실제 업무의 지도가 될 수 있지만 업무 그 자체는 아닙니다. 지도에 없는 길과 지형이 실제 현장에 존재하듯, AI에게 주는 프롬프트에도 업무의 모든 전제와 예외가 담기지는 않습니다.
도메인 지식을 조직의 AI 자산으로 바꾸는 방법
도메인 지식은 AI가 일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영업, 구매, 생산, 물류, 재무, 고객지원 같은 업무에는 각자의 언어와 기준이 있습니다. 같은 “매출”이라는 단어도 팀마다 다르게 볼 수 있고, 같은 “고객”이라는 단어도 계약 기준인지, 청구 기준인지, 사용 기준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 차이를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AI 도구만 배포하면, 조직 구성원마다 다른 방식으로 AI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답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가격 정책, 고객 분류, 승인 절차, 법무 검토 기준, 현업의 예외 규칙이 정리되어 있으면 AI는 조직에 맞는 일관된 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이 알고 있는 업무 맥락을 조직 전체가 반복해서 쓸 수 있으려면, 그 지식은 시스템이 참조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구조가 온톨로지입니다. 온톨로지는 고객사의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데이터끼리 연결되는지, 어떤 업무 용어와 기준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정의합니다.
Enhans가 실제 엔터프라이즈 AI 도입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바로 이 지점과 연결됩니다. 조직이 가진 도메인 지식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그 기준을 AI가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AI 도입 교육 이후에 필요한 질문
AI 리터러시 교육은 직원들이 AI를 직접 써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 이후에는 조직의 업무 지식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 우리 업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 그 문제를 판단할 때 어떤 데이터와 기준이 필요한가
- 현업 담당자의 암묵지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가
- AI가 참조할 수 있도록 어떤 업무 용어와 관계를 정의해야 하는가
- AI가 만든 결과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AI 리터러시는 비로소 조직의 운영 구조가 됩니다. 직원 한 명이 AI를 잘 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조직 전체가 같은 기준으로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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